• Heo, Eun Young

허은영, 한 알의 씨앗 속에서 / 서성록

허은영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그만 상자들이 ‘목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있음을 본다. 한 개가 듬직하게 자리잡은 것도 있지만 여러 개가 올망졸망 자리잡은 것도 있다. 작가는 캔버스를 지지체로 사용하여 그 위에 여러 겹의 한지를 겹치고 난 뒤 화면에다 네모형상으로 오려낸 부분에 한지상자를 끼워 넣거나 그 아래에 접착시켜 상자의 속이 들여다보이게 하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종이 상자를 올려세운다. 앞에서 보면 움푹 들어가 있지만 뒤에서 보면 종이상자로 집을 지은 듯이 보인다.

작가는 이 입체 상자를 “개인적인 기억이나 경험의 암시적인 기록을 담는 컨테이너”로 부른다.  즉 ‘마음의 곳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곳은 ‘기억의 깊이’를 내장할 뿐만 아니라 ‘영혼의 에너지’를 담지하는 소중한 처소다. 행동과 정서, 사고를 다루는 일종의 헤드쿼터인 것이다.

그런데 상자의 내부와 외부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안과 밖의 왕래가 불가능한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내부와 외부 사이에 투명천(유리노방천)을 씌워 사실상 매개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교각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짓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패인 부분과 평편한 바깥은 여전히 소통되고 있으며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아의 심부(深部)’를 암시하는 박스를 보호하고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유혹과 충격을 막아주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작품 표면을 보면, 어떤 식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마치 오랜 동안 집안에만 있던 사람이 바깥세계로 외출 나와 그 인상을 적은 것처럼 매우 사랑스럽게 형용하였다. 바깥 동정을 살펴보면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식물, 씨앗, 꽃잎, 과일의 이미지들이 포착되는가 하면 달걀처럼 생긴 모양도 눈에 띈다. 모두가 생명체들과 연관된 이미지들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깔도 곱디곱게 물들어져 있다. 수십번의 손질을 거쳐 탄생시킨 대단히 공교로운 표면이다. 한없이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 같은 수용성이 강한 표면이다.

그에게 세상은 얼룩과 악취의 세상이 아니라 꽃이 피고 이파리가 무성하며 열매가 맺히는 곳이다. 꽃이 진 자리에 과일이 맺히고 수고의 땀은 기쁨의 열매를 안겨주며 고운 바람은 눈물 흘리는 자를 위로한다. 울창한 숲에 들어오면 우리는 나무 향기 가득한 산속에 그대로 묻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낙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허은영은 세상을 경이(驚異)가 일어나는 곳으로 받아들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모티브로 잡는 이미지들은 모두가 생명과 관련된 것들로 꽃씨를 뿌리는 사람처럼  사물 속에서 생명의 섬광을 발견한다. 우주가 펼쳐 보이는 다채로운 신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만큼 성스러운 행위도 없다. 우리가 딛고선 이 세상에는 지금도 무수한 삶의 신비가 펼쳐지고 있다. 그 신비로움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노래를 낳으며 그 노래는 다시 희망을 불러온다.

작가가 식물을 테마로 작업을 한 것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부한 색감과 함께 지하에 뿌려진 씨앗이 추위를 이기고 지상으로 올라와 새 싹을 틔우고, 무성한 이파리를 내며 푸짐한 결실을 맺는, 일련의 생태적인 프로세스에 의거한 작업을 했다. 물론 작가의 이런 생태적 관심이 물리적인 데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옥한 땅에 생명의 씨앗이 뿌려져 튼실한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영적 성숙’과 ‘천상의 은총’을 나타냈다.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종이박스 안에도 생명의 원소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실 또는 한지 끈으로 매듭진 것이 그것인데 어떤 것은 그 형태가 정말로 희미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 매듭을 모든 박스 안에 넣는다. 그것은 생명탄생의 신비를 알려주고 있는 것과 더불어 삶의 시작을 표시한다. 씨앗이 땅에 떨어질 때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적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생명이 출발하는 뜻 깊은 순간이다. 그 씨앗이 자라나 미미한 존재에서 장성한 나무로서 어엿이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땅에 떨어진 씨앗(생명)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실려 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작가는 작은 씨앗을 통해 우리 삶에 있어 결코 변하지 않는 철리(哲理)를 환기시키고 있다.

인간은 몸과 영혼이 결합된 존재이다. 몸에 내주(內住)하는 영혼을 잘 돌보는 일이 우리 몸을 자꾸 흙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보다 중요하다. 영혼의 정원도 몸을 돌보듯이 잘 가꾸어야 ‘그 분의 형상’(Imago Dei)대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각 영혼은 그 분이 총지휘하는 낙원에서 일할 정원사들이기도 하다.  지상의 즐거움이 ‘모조보석’같다면 낙원의 즐거움은 ‘진짜 다이아몬드’에 비교된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참된 즐거움’(스펄전)을 누린다.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잔디밭을 걸으며 새의 합창소리를 듣고 여러 사람들과도 마냥 행복한 시간을 나누게 될 것이다. 땅위의 어느 포도원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포도주, 즉 ‘샬롬의 음료’를 마시게 된다.

허은영은 희망찬 세계에 대한 소망을 유발한다. 감상자를 ‘눈발 날리는’ 청명한 세계로 초대한다. 작가는 이렇듯 순수한 기억을 되살려내고 우리가 염원하는 것을 한층 명료하게 해준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펼쳐 보인다.  그러므로 작품이 선사하는 감흥에 사로잡히는 것은 사랑스럽고 뜻있는 미적 경험이다. 밤새 흰 눈이 쌓여 대지를 하얗게 뒤덮은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다.

/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