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o, Eun Young

작가노트 / 상자작업 ’09-’10

상자는 나의 유년기의 추억과 어우러져 각별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사물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물질적인 수납기능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다양한 심상을 펼쳐내는 메타포적인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 작품에 표현된 네모 또는 열매형태의 상자들은 입체적 구조물로서 지지체에 장착되었고, 이는 화면에서 열려 있는 공간의 단면과 같이 그 안과 주변을 보여준다. 특히 한지로 만든 상자는 그 가장자리에 겹겹이 벌어진 틈을 보이는데, 내부에 매듭이나 실, 바느질 자국 등을 덧붙임으로서 마음에 포착된 감각적 이미지, 존재의 흔적이나 생명의 발아 등을 담는 용기로 표상된다.

나는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로서 ‘Fill Again’, 즉 ‘다시 담다’라는 제목을 설정하였다. 삶을 살아가면서 겪은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마음에 그저 담아두기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꺼내서 다루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어떤 것은 아주 비워 내거나 좀 더 새롭게 채워지기를 바라고 또 어떤 것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지기도 할 것이다. 한지로 일일이 정성스럽게 상자를 만드는 수행적인 과정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는 또 다른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더불어 이러한 의미는 씨앗의 껍질이나 땅과 같이 외부의 단단한 표층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힘이 피어나고 소멸하며 다시 채워지는 자연의 생태적 과정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어진다.

허은영 / 작가노트 2010

상자들………… / 그 안에 이미 담겨 있는 것과 비우고 싶은 것, 남겨두고 싶은 것, 또한 새로 채우고 싶은 것 등에 대한 마음 속의 여러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앗의 내면에 다시 새롭게 채워지는 자연의 신비로운 경이와 같이, 내 마음의 정원에도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기를 기대하며 화단을 가꾸듯 정성스럽게 상자들을 만든다.

허은영 / 작가노트 2009